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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리더십(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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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의 상반된 리더십

① 성장과정의 비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리더십은 마치 불과 물처럼 서로 판이하게 대비된다. 두 사람의 성장과정을 포함하여 성격과 정치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다른 점이 너무나 많다.

우선 두 사람의 판이한 성장과정부터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초등학교 때 안 해본 막일이 없었을 정도로 가난했다. 성냥팔이, 김밥·밀가루떡·엿장사·아이스케키·뻥튀기·풀빵장사….

겨우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에게 어머니는 매정하게 말했다. “우리 형편에 너까지 고등학교에 보내기 어려우니 어미 장사나 도와라! 장사해서 형을 도와야지!” 어린 마음에 얼마나 야속했을까. 어린 시절 그의 마음속에는 어머니의 편애, 형에 대한 경쟁심, 못 생긴 얼굴에 대한 열등감이 강하게 각인되었다. 특히 어머니의 존재는 집안을 책임진 가장(家長)이자 고교 진학 여부를 결정짓는 절대자였고 나아가 운명을 가름하는 신(神)이나 다름없었다.

프로이드 이론에 의하면, 이명박의 어머니는 형만 편애하는 원망의 대상인 동시에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대상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가족사(史)에서 또 하나 독특한 것은 ‘아버지의 심리적 부(不)존재’이다. 이 대통령의 자서전이나 인터뷰, 기고문을 보면, 어머니가 중심부를 차지하는 반면, 아버지는 주변부 또는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다.

2007년 대선정국에서 보여준 경제 지도자의 이미지와 불도저 스타일, 그리고 경선 룰 공방과 최근 도곡동 땅문제, TV 토론회 축소논란 등은 이명박의 성장과정에서 비롯된 어머니 그림자와 무관치 않다. 즉, 이 대통령의 어린 시절은 가난-시장터 하류생활-어머니의 영향으로 연결되어 있다.

반대로 박근혜 전 대표의 어린 시절은 권력-상류생활-아버지의 영향으로 연계되어 이 대통령의 그것과 대비된다.
 

<박근혜 리더십>
화려한 청와대 생활 18년, 은둔의 세월 18년
1997년 정계입문→3선 국회의원→한나라당 총재
→대권도전에 이를 때까지 아버지 그림자 짙어
냉철함 몸에 배어 완벽주의자·원칙주의자 고집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마저 피살되는 성장과정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훗날 냉철해 보일 정도로 안정적인 리더십을 갖추게 만든 주요인이 된다.

박 전 대표는 군인 출신 아버지가 9살 때부터 <이순신><나폴레옹><플루타르크영웅전>과 같은 전쟁소설을 탐독하던 무인기질을 물려받은 탓인지 초등학생 때부터 <삼국지><삼총사>와 같은 무협소설을 즐겨 읽었다. 12살 때 아버지를 따라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여자애답지 않게 승부욕이 강해서 <삼국지>의 뭇 장수들을 흉내 내며 나뭇가지를 휘두르던 개구쟁이였다. 훗날 ‘나의 첫 사랑은 조자룡’이라고 말할 정도로 조자룡의 무술에 푹 빠졌고, 알렉산더 뒤마의 <삼총사>에 등장하는 무사 달타냥의 열성 팬이기도 했다.

아버지 생전에 화려한 청와대 생활 18년, 아버지 사후에 은둔의 세월 18년, 그리고 1997년 정계입문→3선 국회의원→한나라당 총재→대권 도전에 이를 때까지 인간 박근혜의 정신세계와 정치철학에서 ‘아버지의 그림자’(father shadow)를 지울 수 없다. 오죽하면, ‘박근혜 안에 박정희가 살아 있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아버지의 후광을 거론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국모(國母)’ 이미지이다. 그런 어머니가 총격에 피살당했을 때 맏딸 박근혜가 겪은 정신적 충격(truma)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마저 피살된 이후에 닥친 비참한 삶과  두 동생들의 험난했던 삶을 보면, 가히 가족 잔혹사라고 할 만하다. 이런 성장과정이 박 전 대표가 훗날 냉철하게 보일 정도로 안정적인 리더십을 갖추게 만든 주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② 콤플렉스의 비교

우선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갖고 있는 가족 콤플렉스는 2007년 대선국면에서 어떤 형태로 표출되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의 가족 콤플렉스는 2007년 대선국면과 이후 정치상황에서 잘 쓰면 보약이요, 잘못 쓰면 독약이 된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의 어머니 콤플렉스를 보자. 인간 이명박에게 있어서 어머니 콤플렉스는 리더십의 뿌리이기 때문에 그의 성공신화와 부(富)의 축적, 그리고 작금의 국정운영 스타일의 이면에는 어머니의 무의식적인 영향이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 말미암아 이명박이 체득한 것은 목표 지상주의였다. 극도의 가난을 극복하고 형들보다 더 성공해서 어머니에게 인정받고야 말겠다는 강한 보상심리는, 그를 앞만 보고 달려가게 만들었다.

죽기 살기로 수십 년 동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일터로 달려간 덕분에 현대건설에서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의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허허벌판에 빌딩을 짓고, 사막에 도로를 건설하는 전투적 기업가에게는 오로지 목표달성이 중요할 뿐, 과정상의 흠결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서 돈을 벌었고 땅을 샀고 잘 나가는 정치인이 되었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치러야 했던 대가는 절차상의 흠결, 자기관리의 미비에 이어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이르기까지 만만치 않았다.

이 대통령의 낙관적 성격과 감성주의적 세계관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늘 ‘가난을 부끄러워 말라’ ‘돈 많은 사람들을 오히려 도와라’ ‘장사해서도 잘살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극도의 가난 속에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고 독립심이 강했던 어머니의 피를 아들이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낙관주의와 감성적 세계관은 정열적이고 화끈하며 창조적이지만 때로는 가볍고 튀는 언행처럼 즉흥적이고 불안한 측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대통령의 잠재의식 속에 어머니 콤플렉스와 함께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형제 콤플렉스’일 것이다. 어린 시절 이명박에게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은 둘째형 상득씨였다.
 
당시 상득씨는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얼굴과 동네에서 소문난 수재로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부모가 포항 달동네 집을 팔고 서울 :show_clk_pop('3')" onmouseout=javascript:clear_ms_over_timer()>이태원 판자촌 골방으로 이사 간 것도 서울대에 입학한 상득씨의 뒷바라지를 위해서였다.

이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형들로부터 헌옷을 물려 입고 형 때문에 자칫 고교진학을 포기할 뻔 했던 ‘아픈 기억’이 자신도 모르게 깊이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이 강한 상승욕구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정계 입문 이후에도 ‘형제 국회의원’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쳤고, 오늘날 동생은 대통령으로, 형은 중견 정치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형제 콤플렉스의 긍정적 결과인 셈이다.  

<이명박·박근혜 리더십 비교>
李朴 성장과정·성격·정치 스타일은 극과극
두 사람 리더십 물과 불처럼 판이하게 대비
너무 다른 리더십 보완하면 시너지 커지지만
경선·총선 과정에서 감정의 골 깊어져 경쟁관계


이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 ‘못생긴 얼굴 콤플렉스’가 있다고 고백했듯이, 어린 시절 외모 콤플렉스가 다시 부인 콤플렉스로 연결된 것 같다. 심리학적으로 어릴 때부터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는 훗날 미인과 결혼하고 싶은 강한 보상심리가 발생하고 결혼 후에는 부인에게 강한 애착을 갖게 된다.

이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총각 시절 :show_clk_pop('2')" onmouseout=javascript:clear_ms_over_timer()>태국출장 시에 몇 번 만난 첸 링이라는 20세 안팎의 예쁜 중국 소녀를 볼 때마다 “내 얼굴이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하고 고민한 적이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특히 눈이 작아서 수술하고 싶다고 하자 첸링은 “당신 얼굴의 매력은 맑은 눈”이라고 말했는데, 항상 작다고 놀림만 받다가 처음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훗날 이 대통령은 이화여대 재학 중 메이퀸으로 뽑힌 소문난 미인과 결혼했고, 기자들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날은 결혼기념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부인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대단하다.

▲5·16 쿠데타 이후 군정 3년, 3공화국 18년 도합 21년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했던 박 대통령이 아버지로서 애지중지했던 맏딸 박근혜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태양과도 같았다.    

이제 박근혜 전 대표의 ‘아버지 콤플렉스’를 보자. 5·16 쿠데타 이후 군정 3년, 3공화국 18년 도합 21년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했던 박 대통령이 아버지로서 애지중지했던 맏딸 박근혜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태양과도 같았다. 당시 절대 권력자였고 지금도 많은 국민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아버지 박정희의 존재로 인해 박전 대표에게 견고하게 구축된 이미지는 ‘박정희 제일주의주의’이다. 박 전 대표에게 ‘아버지 박정희=스승=국가지도자=애국=절대선’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어떠한 내외부 비판도 용납할 수 없다.

박 전 대표가 5·16은 구국의 혁명이며, 유신정권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한 아버지 콤플렉스는 박 대통령의 모든 것을 닮고 싶어 하는 ‘아버지 동일시’ 현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실제로 아버지의 통치철학과 국정운영 스타일은 부지불식간에 박 전 대표의 냉정함과 카리스마적 면모, 그리고 보수적인 정치노선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가 최측근에게 피살됐던 10·26사건은 박 전대표로 하여금 주변 사람들을 쉽게 믿지 못하는 신중함과 배신자 응징심리를 갖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가 아버지를 닮은 또 다른 성격은 완벽주의이다. 박 전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하는 2~3시간 동안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정도로 절제된 언행의 소유자이다.

박 전 대표가 2007년 경선 검증공방 과정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의 흠결을 용납지 못하는 것도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몸에 밴 완벽주의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가장 강조하는 원칙의 리더십도 완벽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모의 비참한 죽음, 이후 27세 처녀가장의 기나긴 독신생활과 칩거기간 동안 익힌 명상과 동양철학 탐독은 박 전 대표의 초월적 인생관에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결국 한줌, 결국 한점><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삼아>처럼 제목과 내용에는 현실도피와 배신감, 허무주의가 짙게 배어 있다. 이런 초월적 인생관은 지방선거 때 얼굴에 면도칼 테러를 당하고도 동요하지 않는 냉철함과 내공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박 전 대표가 경계해야 할 것은 아버지 콤플렉스의 양면성이다. 아버지 박 대통령은 ‘박정희 향수’나 ‘박정희 후광’ ‘박정희 신드롬’과 같은 긍정적 영향을 주었지만, 진보진영으로부터 ‘박정희 역풍’을 불러일으킬 여지도 적지 않다. 2007년 경선 검증공방에서 논란의 표적이 되었던 영남대·정수장학회 문제는 모두 아버지 시대에 일어난 의혹적 사건들이다. 당시 이명박 진영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 “독재자의 딸”이라고 공격했던 것도 ‘박정희=독재자=박근혜’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려는 의도였다.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서도 20세기 개발독재의 잔영에서 벗어나야 국민적 지지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  

아울러 박근혜 전 대표의 마음속 저변에는 ‘자매 콤플렉스’도 있는 것 같다. 여동생 박근령씨와 남동생 박지만씨의 순탄치 못했던 삶은 외부로 공개하고 싶지 않은 ‘아픈 상처’이다. 특히 여동생은 서울대 음대 출신의 재원으로, 선글라스를 즐겨 쓰고 흐트러지지 않는 태도가 아버지를 닮았다. 근령씨는 어릴 때부터 언니 근혜와 달리 청와대의 답답한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10·26 이후에는 이름을 근영→서영→근령으로 세 번이나 개명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편안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박 전 대표가 평생 안고가야 할 또 다른 업보는 ‘독신 콤플렉스’이다. 박 전 대표는 스스로 “결혼하고 싶었지만 운명이 그렇지 못했다”고 토로했을 정도로 가정적으로서는 불우한 삶을 살았다. 박 전 대표처럼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여성 지도자에게 공적 활동은 물론 사생활도 한 치 의혹이 없어야 한다. 박 전 대표가 2007년 경선과정에서 의혹 투성이인 고(故) 최태민 목사에 대해 고집스러울 정도로 옹호하고 있는 것도 독신 콤플렉스와 결벽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는 “비리가 있었다면 아버지가 가만 두었겠느냐” “횡령과 사기의혹은 실체가 없는 얘기”라며 최 목사에 대해 ‘어렵고 힘들 때 정신적으로 많이 도와주고 위로해준 고마운 분’이라고 옹호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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